디자인 이슈 6/ 몸과 살을 직시하라....직관으로 나가는 방법론
현전으로의 컨셉 vs 부재로서의 컨셉
디자인종합 > 디자인 컬럼 [2010-12-13 18:00]
 

많은 사람이 필자에게 묻는 질문은 현대디자인에 있어서 시장조사나 트렌드 파악보다는 직관을 중시하라는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서 지난 호에  로베르토 베르간티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가능세계론에서 접근해 보면 그 실마리가 풀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디자인계이든 조형계이든, 아니 좀더 지평을 넓혀 인문학계까지 포함해서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인간 사유에 대한 최대의 화두는 메를로 퐁티의 몸철학이 아닌가 한다. 좀 더 과장하자면 21세기는 메를로 퐁티의 시대라고 해도 의심치 않는다. 인간이 <이성적>동물에서 이성적<동물>이라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 온 데에는 그의 공헌이 지대하다.

메를로 퐁티는 인간의 의식은 감각적으로 실존하는 몸에서 체화된 것이므로 의식과 몸을 둘로 나눌 수 없고, 모든 인식과 행위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바로 각자의 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사물을 '본다는 것'은 보는 것인 동시에 사물에 의해 보이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우리는 이것을 직관이라고 하며 현전과 부재의 법칙으로 설명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밤중 한 아가씨가 골목길을 걷는다고 하자. 가로등이 켜져 있겠지만 모든 사물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힘든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황의 어둠이랄까. 이때 아가씨가 보는 것은 골목길, 집, 쓰레기통, 전신주, 주차된 자동차 등등 일 것이다. 이때 그녀의 뒤쪽에서 그녀의 걸음이 아닌 또 다른 걸음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그녀의 직관은 뒤쪽의 사물에 대해 사람, 외계인, 어린이, 개, 나무 또는 장난감 곰을 떠올리면서 그녀의 몸은 이미 주체인 자신을 떠나 객체인 사물에 편입되면서 발걸음은 ‘나 살려라’하면서 빨라질 것이다.

아가씨의 찰나적 직관을 카메라 슬로우 모션기법으로 재현해 보자. 아가씨는 뒤쪽의 발걸음 소리를 듣자마자 이미 그녀는 주체로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의해 보이는 객체적 존재가 된다. 사물에 의해 감싸인 그녀는 맨 먼저 사람이나 외계인, 어린이나 개 등 걸어다니는 사물을 현전하지만 걸어다니지 않는 사물, 즉 나무나 곰인형을 부재로 두면서 마음 한 구석에선 안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물이 걸어다닌다는 것을 인식한 이상 그녀는 다시 사람과 외계인을 위험한 것으로 현전하는 한편 위험하지 않은 것, 즉 어린이나 개를 부재로 두면서 잠시나마 마음 한 구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경향도 보일 것이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결국 사물이면서 걸어다니는 것, 그러면서 위함한 것으로 사람과 외계인을 각각의 대안으로 검색하면서 동시에 인간인 것(사람)과 비인간인 것(외계인)을 구분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다.

아가씨의 빨라진 걸음 소리 뒤쪽에서 “영희야, 아빠다”하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는 비인간적인 것을 부재로(잠재적으로) 두면서 인간적인 것을 현실화(현전)하고서야 발걸음은 멈출 것이다. 그 순간에도 그녀는 <아는>사람과 <모르는>사람이라는 현전과 부재의 드라마를 연출한 후에야 안도를 하게된다. 여기서 부재란 가능세계를 말한다. 우리 인생은 항상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한쪽을 선택하지만 또 다른 한쪽도 <대안세계>로 선택 가능성을 두기 때문이다. 부재는 없는 무의 세계가 아니라 <꽉찬>유의 세계이다. 해체주의자 데리다는 이를 흰종이에 흰글자를 쓰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가씨도 인간이지만 소비자 역시 인간일 것이다. 우리 현대의 인간은 몸과 살을 가진 존재로서 대기업이 쳐 놓은 시장조사와 트렌드라는 덫에 걸리지 않게 되어있다. 물론 과거에 물건이 없던 시절에 대기업이 모토로 한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몰이그물에 울며 겨자먹기식 걸려들었다해도 물건이 넘쳐나는 오늘날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냥법이 될 것이다.

트렌드란 방향, 추세, 경향, 동향 등으로 불리우며 장기간에 걸쳐 유행의 성장, 정체, 후퇴등을 반영하는 거시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소비자의 의식은 그렇게 장기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같이 대규모 광고, 판촉 활동 등을 통해 기업이 주도적으로 유행을 창조하던 방식으로 현대의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은 더욱 주체적,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것은 인식의 주체가 마음과 정신에서 몸과 살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디자인행위의 분명한 답은 시장조사와 트렌드를 버리고 직관을 택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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